북노마드 인터뷰 

이제 작가님(편의상 경어를 생략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

 

- 그림은 언제 그리나요?

보통 매일 출근해서 오후 내내 작업하는 편입니다.

 

- 미술작가로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소통 가능한 예술인들을 만나게 된 것. 둘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작가가 되자는 결심을 했는데, 십년이 지난 지금이 그 전보다 삶에 대한 태도나 방식이 훨씬 유연해 진 것 같아 좋습니다.

 

- 미술대학은 무엇을 배우는(배워야 하는) 곳일까요?

예술의 가능성과 작가를 포함한 다양한 미술인들의 사는 방식을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형태와 결합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찾는데 최대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밤(새벽)에 무엇을 주로 하나요?

맥주와 영화

 

- 어떤 미술상 수상으로 10억 원의 상금을 받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일단 대부분의 작가들이 바라는 대로 생계걱정 안하고 작업만으로 먹고 사는 삶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 작업실 외에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편안한 카페, 서울 곳곳의 산책로를 좋아합니다.

 

- 서울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1년간 작업할 수 있다면 어디를 가겠습니까? 이유는요?

평양이요. 가장 가깝고, 가장 가기 어려운 곳이니까요.

 

- 미술의 본질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류의 유산.

 

- 지금 내 삶의 가장 스트레스는?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게 되는 희망은?

스트레스: 허리가 안 좋아졌다.

희망: 요가를 시작했다.

 

- 자신 혹은 자신의 작업의 성격에 가장 맞는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봄기운을 충전하고 싶습니다.

 

- 당신은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습니까?

생각보다 삼십대에는 훨씬 나이와 싸울 일이 많네요.

 

- 당신 생각에, 한 세계를 열고 닫은 천재 미술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천재를 믿지 않지만 누군가를 통해 한번 열린 세상은 영원히 열려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네가 열어 준 세상을 사랑합니다.

 

- 당신의 그림에 감각과 사유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그림에서 감각과 사유의 긴장 상태가 적절하게 드러났을 때 성공적으로 그려졌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림이란 사유로 시작해서 사유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릴 때의 감각의 몰입도 중요하지만 결국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끝낼 것이냐는 사유의 몫이니까요. 우연히 발생한 터치를 두느냐, 더하느냐, 지우느냐의 문제에서부터 내가 그린 이 세계를 믿는가? 등등의 질문까지 그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밀도 깊은 사유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 회화를 기초로 사진을 어떻게 이용하나요?

메모를 하는 소설가처럼, 저는 일상적으로 작업을 위한 이미지를 찍습니다.

사진의 이미지를 스케치 삼아 거의 그대로 그릴 때도 있고, 어떠한 사진들은 서로 관계성을 갖으면서 작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 붓의 대담한 흔적, 강조된 색감, 물감의 물성 등 화가마다 저마다 중시하는 부분이 다르다. 당신의 회화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 중요하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작가의 육체성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붓의 흔적은 회화를 회화답게 만드는 아주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 회화의 크기와 작품의 질(質)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큰 회화 작업이 주는 물리적인 시원함을 좋아하긴 하지만, 회화의 크기와 작품의 질이 비례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림이 그림 너머의 어떤 세계를 보는 창이라면, 창이 커진다고 그 세계의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몇 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수십 점의 보나르 작품들이 전시되었을 때에도 가장 감동적이었던 작품은 10호 정도 되는 아몬드 나무를 그린 그림이었어요.

 

- 호크니는 말합니다. 그림은 그림이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당신에게 그림은 대체 무엇인가요

그림은 실재의 세계와 많은 것이 닮았지만 결국은 현실과 다른 ‘그림’이라는 어떤 세계이죠. 욕망과 절망, 희망이 압축된 그림의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그림 밖의 세계가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 드로잉은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로잉이 당신의 작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혹은 역할은 어떤가요?

지금까지 저의 유화작업도 유화의 전통적 방식보다는 오히려 드로잉의 방식과 더 유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목탄 드로잉을 해오고 있는데, 캔버스 작업과는 또 다른 자극이 되어서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특히 작품 형식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지금 진행 중인 드로잉들도 입체,영상 등의 작업으로 연결해 볼 예정입니다.

 

- 주제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고, 기억과 상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으로’ 그림을 그리나요?

저는 주제, 기억, 상상 모두를 담습니다. 주제를 담지만 제 일상과 주변에서 이미지를 불러들이고 일상의 사소함에서 거대한 주제들을 발견하곤 하니까요. 예를 들어 2010년 작 <물의 꿈> 같은 경우는 재개발이 시작된 동네 풍경에서 목격한 상실의 형태들, 그 풍경들을 물에 잠긴 상상의 공간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 2002년 대안공간 풀에서 선보인 물속에서 몸을 움츠린 대형 자화상 <무제>(2001)은 개인의 단순한 내면에 대한 탐구라기 보다는 가시적/비가시적인 사회적 억압 시스템에 대한 처절함 몸짓으로 보인다. 이후 작업의 행보에서 이 작업에 대한 의미가 더욱 두터워진다. 이 작업에 대한 2001년 생각과 2013년의 생각은?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우연히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당시에는 제가 느낀 그 감정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습니다. 개인의 상실감이 세계의 다른 구조들과 맞물리고 통해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알 지 못했지요. 그 막연함이 2001년 당시의 동력은 되었지만 이후 지속적인 작업으로 끌어 나가기엔 한계가 있었고. 십년이 지난 후 최근에야 저도 2001년 자화상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억압, 상실, 공포와 같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밤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이 세계로부터 어떻게 독립되어 있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내어 준 예술의 주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무맹랑 하지만 누군가 한번 쯤 얘기해 볼만한 주제 말이예요. 2001년 제 자화상은 어쩌면 이 무한한 주제를 펼쳐가는데 작은 힌트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 첫 개인전 <우리의 찬란한 순간들>(조흥갤러리, 2005)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강홍구 선생님이 언급했듯이 '슬쩍'이다. '현장'과 '내 이야기' 사이의 최초의 발언으로 보이는 이 전시에서 당신은 곁눈질 하듯 금호동을 바라봤다.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화면 전체의 색채에서도 발견되듯이 개발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시한부적 공간'에 놓인 우리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개인전 이전, 당시, 이후 '현장'과 '내 이야기' 사이에서 발생했던 작가의 고민은 무엇이었나?

첫 개인전에서 보여진 금호동 그림들은 고발이나 낭만의 시선을 배제하려고 하다보니 생긴 담담한 시선과 곧 사라질 동네를 바라보는 애잔함의 온도가 뒤섞여 그려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시가 끝난 한참 후에도 ‘현장’과 ‘내 이야기’ 사이의 간극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후 몇 년동안 주변의 작가들과 함께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들을 같이 하게 되면서 막연한 고민들이 조금씩 해결되었죠. 참 소중한 경험들이었습니다.

 

 

- 마석 가구공단에서 진행한 <산따의 투유투미 프로젝트>와 <기는 풍경>은 발언적 성격이 강하다. 이 작업들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대로 현장에 대한 제 관심이 계속 늘어나면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짧은 경력으로 화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부담스러운 시기였는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들과 현장에서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신나는 일’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착각이었지만 늘 고민이었던 현장과 내 이야기 사이의 간극이 갑자기 한 번에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몇 년을 시간을 그렇게 보낸 후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프로젝트들은 호기심과 긍정의 에너지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기존의 제 생각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섬세한 결의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죠. 재밌는 결론은 그와 함께 그림의 가능성도 다시 보게 되었어요.

 

- <꽃배달>(갤러리 킹, 2009)에서는 인물(인부)가 등장한다. 이후 신체 혹은 그 일부가 작업에 등장한다. <너의 노래 지혜>(2010)에는 자신의 몸을 전면에 내세운다. 거리두기에서 대상에 가까이 간다(혹은 강하게 끌어당긴다). 풍경에서 인물로 변했다는 단편적 관점 너머에 대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너의 문제이면서 나의 문제이지 않는가라는 관점이 담겨 있다. 도시 재개발의 잔해들을 다룰 때 단순한 부정이나, 낭만성의 포장에서 비껴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작업 초기에 던진 질문('현장'/'내 이야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보다 그림 안에서 대상과의 관계설정을 맺는 데에 있어서 유연해 진 것 같아요. 2010년 개인전을 통해 대상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인물과 풍경이, 현장과 상상이 오버랩 되면서 ‘현실감 있는 상상의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죠. 앞으로도 ‘현장’과 ‘내 이야기’ 둘을 팽팽하게 끌어안으면서도 가능한 상상의 이미지들을 꾸준히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최초의 밤>(2011) 연작은 인상적이다. 빛이 제공하는 강력하고, 익숙한 시각체계에서 벗어나 '다른(혹은 낯선) 감각'으로 확장되는 순간의 질감을 더듬는 것 같다. 이것은 '자신의 눈'으로만 바라봤던 그 대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태도의 변화로도 보인다. 당신에게 <최초의 밤> 연작은 어떤 의미인지?

<최초의 밤>연작은 ‘스스로에게 던진 미션’입니다. 밤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던지 반복이 심한 시리즈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냥 1000일 기도를 하는 사람처럼, 할 수 있는 데 까지 그렇게 당분간 계속 진행해 나갈 겁니다. 복합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의 ‘밤’이지만, 굉장히 보편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에서 말씀하신대로 대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과정이죠. 현재 <최초의 밤>그림연작과 관련해 진행 중인 새 작업들도 지인들의 아주 구체적인 경험들을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한 사운드 녹음과 비디오 촬영을 위해 5월-6월 제주에 머물면서 작업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년 봄에 갤러리조선에서 개인전 일정이 잡혀있는데, 그때 좀 더 진행된 <최초의 밤>연작을 보실 수 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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