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에가 본 것 / 권진

What Danaë Saw / Kwon Jin

그림에 여자가 있다. 그림에 밤이 있다. 그림에 토기가 있고, 여자의 몸도 보인다. 그림에 들판과 산이 있다. 그림에 구멍이 보인다. 그림에 새벽이 보인다. 그림은 보인다. 읽기 전에 보이고, 이해하기 전에 보인다. 그림과 그림이 모여서도 보이고, 서로 흩어져도 연결이 된다. 이 그림은 저 그림과 대구를 이루는 것 같고, 어떤 그림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 같고, 어떤 그림은 날렵하게 움직이고, 또 다른 그림은 느리게 사라진다. 그림은 이 좁은 공간을 통과해서 다른 세계를 열어젖힌다. 그림은 광범위한 우주의 무늬를 한 줌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뿌옇게 흐려진다. 눈부시게 밝아진다. 어느 순간 철퍼덕, 알 수 없는 심상이 달라붙는다. 저 여자는 익숙한 얼굴이다. 여자들이 나를 보는 것만 같다. 저 밤은 내가 기억하는 무수한 밤의 시간을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둥근 토기는 손을 뻗으면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겹겹이 얹어진 도톰한 물감을 만지고 싶다. 저 들판은 멀리 있고, 이 산맥은 높이 솟아오르지만, 또 내게 가까운 동산처럼 보인다. 저 구멍은 아득하다. 그런데 저 시간은 왜 내게 새벽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그림은 이렇게 볼수록 즐겁다. 보고, 자꾸 보면서 즐거움이 생긴다.

 

이 즐거움에 이야기를 더해보자. 그리스 신화에서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의 딸이다. 성격이 완만하고 품이 넓은 통치자로 알려졌던 아크리시우스에게 근심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크리시우스는 딸이 낳을 외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미혼의 공주 다나에를 높은 첨탑에 감금한다. 세기의 바람둥이 제우스는 미모의 다나에가 탑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 헤라의 질투를 피해 황금비로 변신해서 탑에 잠입한다. 이후 다나에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데, 이 아이가 바로 용감무쌍하기로 소문난 당대의 영웅 페르세우스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베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틀라스의 공격에 대한 반격으로 메두사의 얼굴을 꺼내어 그를 돌로 변하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돌이 된 아틀라스가 지금의 아틀라스 산맥이라고 한다. 어쨌든 페르세우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외할아버지의 손에 버림받았다. 다른 해석에서는 페르세우스의 아버지는 제우스가 아니라는 설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는 페르세우스의 아버지는 아크리시우스의 쌍둥이 동생 프로이토스, 그러니까 외종조부라고 한다. 쌍둥이 형이 손자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전해들은 프로이토스가 질녀인 다나에를 겁탈했다는 것이다.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첨탑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아크리시우스는 다나에를 찾아와 진실을 물었고, 다나에는 제우스라고 답한다. 제우스의 보복이 두려운 아크리시우스는 아이를 죽이는 대신 나무 궤짝에 넣어 바다로 띄워 보내고, 훗날 기가 막힌 운명으로 원반에 맞아 아크리시우스는 죽는다. 신탁이 맞았다.

 

신화는 대개 남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림에서 만큼은 신화 속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 다나에는 인기 캐릭터에 속한다. 여러 화가들이 오랫동안 다나에를 그려왔다. 이른 나이에 그림으로 부와 명예를 누린 렘브란트 역시 다나에를 그렸다. 17세기 유럽의 가장 활발한 무역경로였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는 당대 가장 잘 나가던 화가였다. 렘브란트의 다나에는 그의 황금기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 시기에 그려진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을 보면 유난히 비싼 옷으로 잔뜩 치장을 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다나에는 그런 시기에 태어난, 유독 신성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충만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이 시기 이후 렘브란트의 인생은 불행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빚더미에 오르고, 오랜 시간 그림을 못 그린다. 어쨌든 렘브란트는 풍만한 육체의 다나에가 청탑 안에서 지루함에 묻혀 살다가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를 보고 반가워하는 순간을 본 것 같다.

 

클림트도 다나에를 그렸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던 혼란의 시대 유럽에서 여전히 제국의 틀을 유지하던 오스트리아에 클림트가 있었다. 클림트는 유독 여인을 많이 그렸고, 그의 스튜디오에는 항상 나체의 모델들이 드나들며, 끊임없는 염문설을 만들어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샀다고 한다. 동시대 빈에는 프로이트가 있었고,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인간의 의식 세계를 해석한다. 클림트는 여인의 나체를 통해 신체의 관능과 쾌락, 인간의 억압과 자유, 화려함 이면의 절망, 삶에 깃든 죽음의 공포 등을 표현했고, 이것이 종종 바닥으로 떨어진 당시의 시대정신을 투영한다고 읽을 수 있다. 클림트는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즈음 감기인지 매독인지 불분명한 병으로 사망했고, 그의 죽음 이후 오스트리아의 병든 부르주아는 투항 하나 없이 나치에 점령당한다. 클림트의 다나에는 황금비의 제우스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붉은 머리칼에 투명한 피부, 적당한 굴곡을 가진, 야하고, 아이 같은 순수함이 매력인 여자다. 그녀는 일말의 저항감도 없이 편안하게 웅크린 모습으로 화면을 채운다. 하늘보다는 땅에 가까운 여인이며, 실제보다는 꿈에 가까운 장면이다.

 

여자, 토기, 어둠, 빛, 들판, 구멍, 숨, 춤, 풀, 바람 등 탐미적인 상징들이 어우러진 이제의 그림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추적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끊임없는 상징들의 리듬이, 그림에서 그림으로 넘어가는 그 행렬이 신비롭다. 앞의 그림이 뒤의 그림 위로 쌓이고, 뒤의 그림이 그 뒤의 그림 밖으로 빠져나가는 화면의 연속적인 구성이 눈을 이끈다. 그림을 계속 보게 한다. 결국 이 그림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을 보는 나의 시선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림을 바라보는 나의 위치다. 그것이 산과 들판으로 이루어진 공간적 위치인지, 밤과 새벽 같은 시간에서 비롯되는지, 토기 속인지, 우주 안인지, 여자와 몸을 훑어 탐닉하는지, 아니면 내가 그 몸이 되는 것인지, 위치에 따라서 그림이 계속 변한다. 달리 말하면, 이 시선은 다나에의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다나에는 어떤 전설 속에서 서사의 시작점이면서도, 인물상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자신으로부터 발생한 여러 비극을 계속 응시한 관찰자다. 그와 함께 서사가 시작하던 순간은 여러 번 그림이 되었지만, 정작 우리는 다나에가 주체가 된 시점을 알 길이 없다. 이제의 그림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면 사라진 주체가 활성화된, 그동안 비가시적이던 주체의 시점이 지금으로 연동되는 그 지점이다. 다나에가 본 것을 그린다면? 다나에가 직접 들려주는 다나에의 이야기는 신화가 될 수 있을까? 신화의 어떤 부분이 파괴되고, 어떤 새로움이 열릴 수 있을까? 용감한 붓질이다.

 

 

권진 / 약력

 

 

첨탑

원반에 맞아

권진 / 영국에서 고고학과 미술사, 디지털 문화사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일을 배우고 시작했다.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전시를 맡았고,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중이다.

We see women in the image. We see the night in it. We see pottery, depicted together with bodies of women. There are fields and mountains in the image. We see holes. We see the dawn. We see the image. We see it, before we read or understand it. We just see it. We can see some images together with others like a flock; even when they appear as scattered images, we are still able to connect them with each other. An image seems to echo another. An image, when we look at it closer, seems to disclose an unknown world. One seems to be in a swift movement, while another gently disappears. Images pass through this narrow space, to open up a different world. Images, at times, place a handful of the vast pattern of the universe onto a palm of our hands. Then it blurs. Then again, it whites out. At a point, certain imagery occurs bluntly to my mind. The woman’s face is familiar to me. Those women seem to gaze at me. That night obstinately chases the time of numerous nights that I am able to remember. The roundness of the pottery looks so tangible, as if I could easily take it out from the image. The protruding thickness of the layered colors allures me to touch it. The fields are remote and the mountains soar high, yet suggest an approximate and familiar hill at the same time. The hole is as deep as an abyss. But why does that time looks like a dawn to me? The more I look at an image, the larger grows the amusement. Looking at them over and over, the delight is more and more refreshed.

Let’s talk about this delight. In Greek mythology, Danaë was the daughter of Acrisius, the King of Argos. The only concern of Acrisius, known as a moderate man and a benign governor, was his lack of a son who can succeed him. One day, an oracle warned him that his grandson, who will be born from his own daughter Danaë, will kill him. To prevent this destiny, he imprisons the virgin daughter up on a high spire. Zeus, the notorious seducing god, heard the news and sneaked in to the tower in disguise of golden rain, to escape from the jealous sight of his wife Hera. Danaë got pregnant with Perseus, who would become the audacious hero of the era. Perseus is known for the episode of turning Atlas into stone, showing him the face of Medusa, whose head was in Perseus’ possession as Atlas attacked Perseus on his way home, after beheading her. The myth dictates that Atlas, turned to stone, became the Atlas Mountains. Anyhow, Perseus was abandoned right after the birth by his own grandfather because of the oracle. Another interpretation says that Perseus’ father is not Zeus but Proetus, Acrisius’ twin brother, thus another grandfather on his mother’s side. According to this version, Proetus raped the niece out of fear of having his twin brother to be killed by his grandson. While the real father was unclear, as the sound of the crying newborn was to be heard, Acrisius questioned Danaë about the truth, to which she answered with the name of Zeus. Dreading Zeus’ vengeance, Acrisious put Perseus in a wooden chest and threw it into the ocean. After a series of tumultuous incidents, Acrisius died, hit by Perseus’ quoit – the oracle was fulfilled.

Mythology in general is full of stories of men, while it is mostly depicted with women. Danaë is one of the most popular figures. Many painters portrayed her over the history. Rembrandt, who achieved wealth and fame already in his early age through his art, also painted Danaë. He was the most successful artist in Amsterdam in the Netherlands, as it was situated on the most vivid route for trading in the seventeenth-century Europe. Rembrandt’s Danaë was completed during the golden age of his career. In the artist’s self portraits of this period, he appears proudly adorned with luxurious garment. His Danaë was born in this epoch, depicted in full of holy and mysterious flair. After this period, Rembrandt’s successful life started to decline: his wife died during childbirth, his extravagant lifestyle ended up in a uge accumulation of debt, which led him to a long hiatus as a painter. In any case, Rembrandt must have seen the moment of rejoice in Danaë’s voluptuous body at Zeus’ golden rain, after her dreary captivity on the top of the spire.

Gustav Klimt also painted Danaë. In the chaos of the coming new century in Europe, Austrian Empire still persisted, where Klimt lived. It is very apparent that Klimt focused on female figures, his studio was full of naked women posing for him and he was subjected to envy and jealousy of people due to his continuous scandals. In the same era, Sigmund Freud also lived in Vienna, who interpreted human consciousness centering in sexuality. Through painting female nudes, Klimt expressed physical sensuality and pleasure, human oppression and freedom, desperation hidden behind extravagance and the fear of death that dwells in life – all this could be read as a reflection of the Zeitgeist, torn down and in struggle. The reason of Klimt’s death is unclear whether it was due to influenza or syphilis. After his death, the decadent Austrian bourgeoisie quickly surrendered to Nazi. Klimt’s Danaë is depicted in the moment of her total submission to Zeus’ golden rain, as a readhead with translucent skin, voluptuous and sensuous yet innocent like a child. Her body fills up the frame, comfortably crouching without any sense of resistance. This woman seems to be positioned closer to the earth than to the sky, submerged in a dreamlike scene rather than a real one.

Aestheticized symbolism such as women, pottery, obscurity, hole, breath, dance, grass and wind mingle in Leeje’s painting, yet instead of suggesting to retrieve the hidden meanings behind them, the mystery prevails in the rhythm made of the chain of symbols as well as in the procession that is carried over from an image to another. Perceiving them, a precedent image overlaps over the next one and then disappears out of the frame of another following image. The sequential composition of different images captivates the viewers’ eyes; they keep the viewer looking at them. The experience leads me to a possible conclusion, that these are conceived to return my attention to my own gaze. More concretely, they indicate my positioning in viewing. Whether this position situates in a physical space configured by mountains and fields, or in a temporal space like the night or the dawn, whether within pottery or universe, or indulging in caressing female bodies, or getting indulged, me being the body that gets caressed, my position switches constantly, depending on the placement of my self. In other words, this gaze belongs to Danaë. She was a starting point for the narrative in a myth, but at the same time, she was not a confirmed figure in detail; she was a figure who had to constantly gaze at the series of tragedy that initiated from her. The starting point of the narrative has been turned into numerous images, yet we don’t know when was the moment of her becoming a proper subject of gaze. The value of Leeje’s image could be found in the moment of this activation of the missing subject, whose point of view that has been invisible finally synchronizes to the present. Can one paint what Danaë saw? Can the story of Danaë, told by herself, ever become a myth? Which part of mythology could be destroyed, to open up to which kind of new ones? In this regard, this stroke of brush could be a truthfully courageous one.

Kwon Jin studied History of Art and Archaeology and Digital Culture History in the UK. After coming back to Korea, she has been working in the contemporary art and exhibition, began at Arko Art Center of Arts Council Korea. Kwon Previously worked at the 4th Anyang Public Art Project and currently she is a curator at Seoul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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