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을 마주하는 세가지 감각

leeje
 

방 

 

세 살 즈음, 같은 방에 늘 누워 지내시던 증조할머니를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다. 말이 트이기 전에  먼저 다가온 연민, 분노, 공포 비슷한 감정들은 그때 내 안 어딘가에 들어와 깊숙히 박혔다. 재개발 현장에서 처음 본 도시의 지평선. 굉음 속 긴 터널을 빠져 나올 때 들어오는 가득한 빛. 비 오는 도로변에서 부둥켜 안고 목 놓아 울고 있는 중년의 여자들. 출발하는 지하철을 따라 뛰면서 배웅하는 남자의 미소. 오돌토돌 모래알처럼 퍼진 중학생 조카의 이마여드름. 꽃이 막 진 목련나무 앞에서 받은 동료의 부고. 손잡이가 떨어진 가방과 사방으로 흩어진 물건들의 배열.  마스크를 끼고 한 무리가 되어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가라앉는 배 안에서 찍힌 기울어진 풍경들. ‘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검은 드레스. 양손을 흔들며 안녕을 알리는 고공농성자. 짙은 여름의 운동장과 공을 차는 아이들. 국경 너머 강가에서 여유롭게 물을 마시고 있는 한 마리의 개. 빠르게 스쳐가고 서서히 가라앉는 매일의 풍경 속에서 가끔씩 나는 옛날의 그 방에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국경

이동하는 자라서 이동한다. 도달할 수 없는 사건과 기념비 사이, 침묵과 증언 사이로 야간버스 만큼 겨우 자유롭다. 안개 깊은 날에 길을 잃기는 쉽지 않다. 짙은 밤에도 옆에는 지평선이 그 옆에는 강이 흐른다고 믿는 것이 한계이다. 종종 일부러 바람이 가는 쪽으로 여러 번 몸을 틀었으나 경로를 벗어나는 것은 제 이름을 잊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담아온 것을 멀리 던지면 안개의 심도를 알 수 있나. 던져진 것들이 바닥에서 깨어지는 소리에 지평선의 실재를 확인한다. 이방인의 마음, 이주의 몸짓, 생의 냄새 같은 게 거기 있을까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허기가 몰려왔다. 언 땅을 손으로 팠다는 그는 죽은 부인의 국수를 삶아 내었다. 상상은 나름 진실. 수행은 연약한 거짓말.

 

침묵하는 자는 침묵을 파고들게 되어있다. 잠이 들었고 살짝 깼는데 어느 젖무덤 옆에서 킁킁거리는 어린 내가 고양이 키스를 한다. 돌아가고 싶은 곳은 모두 고향이지. 닿을 수 있는 이는 고향이 아니지. 나의 빈 심장을 더 사랑해야겠다. 강이 흐르고 바람이 지나는 곳, 죽은 이가 들어오는 곳, 겨울호랑이가 느리게 통과하는 곳. 너를 다시 만나는 곳, 내가 사라질 곳. 

 

흑백사진이었고. 유적을 발굴하는 현장이었는데 언제 누가 무엇을 찾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시 내가 연어를 씹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강을 거슬러 고향까지 도착하지 못한 채 물이 고이고 흐르는 적당한 곳에 무리를 이루어 살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먹먹한 마음이 들어 붉은 살과 뼈를 오도독오도독 최대한 정성스럽게 씹어 삼켰다. 

 

(2019년 6월, 중국 연변에서 시작하여 두만강 국경을 따라 훈춘과 러시아의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톡까지 여행하였다.)

 

‘텅 빈 공원에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낡은 축구공을 한 팔로 안고 덤덤한 얼굴로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움직인다. 방향을 바꿔가며 공을 차기 시작한다. 오로지 공에 집중하여, 공이 가는 길을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합일 되는 순간의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공Ball>은 여행 중 만난 소년에 대한 메모를 토대로 그린 작품이다. 나는 실제 경험들을 근거로 어떤 고립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심리상태와 몸의 사건들을 추상과 구상이 뒤섞인 회화 이미지로 그린다. 

요즘 나는 작가로서 시민으로서 급격한 혼란을 겪는 중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확산과 그 여파로 세계 곳곳의 모든 일상이 깨지고 변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 세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예술은 얼마나 무력한지 절절히 느끼고 있다. 무너진 생태계와 성찰없는 신자유주의 체제 앞에서 예술이 뒷걸음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신종 바이러스만이 아닌, 예측 불가의 재앙들이 계속 이어질 때, 빙하가 2030년 다 녹는다는 뉴스 앞에서, 나는 다가올 미래의 비극적인 상황으로부터 어떤 거리를 획득하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파국의 시대에 예술은 감각적 세상에 대한 관심과 양심을 잊지 않는 경험 사이에서만 가능할지 모른다. 홀로 공을 차는 소년처럼 침묵 속에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비축해주길, 절망스런 마음을 숨기지 말고 무력한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길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바란다. 어느 유명 피아니스트가 노인이 되어서야 힘을 빼고 드디어 본인이 원하는 연주를 마음껏 하게 된 것처럼, 시대적 절망이 계속되면 기존의 관념들이 깨지고 새로운 감각들로 채워진 자유로운 그림들을 마음껏 그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들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김수영 <파밭가에서>中 

                                                                         

 

                                                                          (아트인컬쳐 2020년 5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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