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컬쳐 6월 / 김수영
작가 이제는 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왔다. 재개발 앞에 놓인 동네의 구석구석의 정경이나 거리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칠지 모르는 일상의 단면, 변화하고 있는 동네 풍경을 눈앞에 오래도록 붙잡는 그림이었다. 그러던 그가 작년에 개인전과 2인전을 열었다. 그는 개발과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풍경에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투영하기 시작했다. 유화의 다양한 기법과 소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자신이 현실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수성을 거침없는 붓질로 풀어내고 있다.
자아와 현실 사이의 줄다리기
이제는 2002년 대안공간풀에서 그 해의 대학 졸업전에서 선발한 작가들을 모아 연 단체전에 출품해 미술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 전시에 물속에 잠긴 자신의 모습을 그린 대형 자화상을 선보였다. 그는 대학시절에 불확실한 미래,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내면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된 계기는 이 무렵 대안공간풀의 현실참여적 경향의 작품을 접한 것이었다. “당시 믹스라이스 같은 , 소수자의 정치적 이슈에 직접 발언하는 작가들의 얘기가 너무 생소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이전까진 미술계에 이런 경향이 존재하는지 전혀 몰랐죠”
이제는 2005년 첫 개인전에서 곧 재개발로 사라져 버릴 금호동의 풍경을 담았다. 금호동은 그가 20년 넘게 토박이로 살아온 동네다. 그림 속 텅빈 운동장과 교회, 초록색 지선버스가 지나가고 있는 로터리, 아줌마 아저씨들이 베드민턴을 치는 약수터, 고층 아파트 앞으로 펼쳐진 공사부지 등은 우리 중 누구의 동네였다 해도 좋을 만큼 익숙하다. 이제는 이 풍경을 꼼꼼한 필치로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블랙을 뺀 뿌연 색채를 구사해 화면에서 시간이 탈색해 버린 듯한 효과를 줬다. 뭔가가 빠져나간 듯한, 아련한 심리적 거리감을 주는 화면 공간을 표현하는데 주력한 것이다. "곧 사라질 대상을 바라보는 쓸쓸함, 기억속의 공간같은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죠. 우리가 개발로 변해가는 일종의 ‘시한부의 공간’에 살고 있음을 작업으로 각인시키고 싶었어요."
이후 한참동안 그는 현실참여적 성격이 강한 미술작업에 몰두했다. 개발에 대한 첨예한 이슈가 중첩된 마석가구공단에서 주민 참여 미술<산따의 투유투미 프로젝트>(2007)을 진행했다. 2008년도에는 다른 2명의 작가들과 함께 그룹<기는 풍경>을 결성해 ‘시장만능주의와 개발지상주의가 빚어 낸 역기능’에 대해 발언하는 설치작업도 선보였다. “금호동 풍경을 그릴때까지만 해도 작업실에만 고립되어 있는 시간이 괴로웠어요. 내 그림의 대상이 풍경이기도 했고, ‘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라 생각에 갑갑했죠. 그래서 소외 계층의 삶의 현장을 찾아 미술활동을 펼쳤는데, 그곳에는 그곳 나름의 고민이 있더라구요. 내가 무척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됐어요.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니, 내 그림으로 무엇을 얘기할 수 있는지 명확해 지더군요.”
이렇게 그는 ‘현장’과 ‘내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고민한 끝에 작업실에 돌아와 2009년에 개인전 <꽃배달>을 선보였다. 보일듯 말듯 하얗게 빛바랜 원색으로오토바이를 타고 대형화환을 배달하는 인부를 축약된 몇 번의 붓질로 담아냈다. 대상에 거리를 두고 덤덤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는 이전 작품과 유사하지만 소재의 중심이 풍경에서 인물로 이동했다. 멀찍이서 조망한 듯한 거리 풍경 속에 일하고 있는 인부의 모습을 담았다. 대다수 인부들은 전봇대를 고치거나 등을 달면서 공중에 매달려 일하고 있다. “이때는 구체적이고 좀 더 작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어, 인물에 제 자신을 투영했던 것 같아요. 공중에서 일하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야에는 잘 들어오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인물로 보였어요. 한번 호기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니까 의외로 그런 전망들이 우리 일상에 정말 많더라구요. ” 그는 이렇게 언제나 있었을 것 같은 풍경, 그러나 ‘보고도 보지 못하는 일상’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구체적인 대상과 추상적인 감정사이
이제의 작품이 형식과 소재에서 몇 벙의 변화를 겪는 동안, 그가 처음 그렸던 금호동에는 재개발이 진행됐다. 오래 시간 관계를 맺고 살아 온 삶의 공간 구석구석이 공사장 흙더미로 변해버린 그때, 그는 다시 그 황량한 풍경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2010년 선보인 <바람><더미><섬의 가능성> 같은 작품들엔 아무것도 없는 공사장 모래 위로 바람이 부는 모습, 공사장에 쌓여 있는 돌더미, 제멋대로 구쳐진 철근,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가 화면을 채운다. “저는 주변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편인데, 금호동의 개발 풍경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당시 삶을 바라보던 상실의 감정이 그 무너진 환경에 확 투영되는 느낌이었죠.”
이렇게 내적 필요에서 소재로 선택한 도시의 잔해들은 개발을 시각화하는 일련의 부정적 혹은 낭만적인 어조의 재현에서 비껴나 있다. 단순한 터치, 속도감 있는 필치, 단단하게 응축된 구성, 부드럽거나 거친 질감 등의 수려한 조형어법이 적재적소에 표현되어 경쾌한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느끼는 상실감, 변화에 대한 기대, 황량한 풍경의 아름다움 같은 양가적 표현 의지마저 묻어난다.
2010년 풀과 OCI미술관에서 열린 두 전시에서 이제가 보여 준 작품의 가장 큰 변화는, 그간의 사리에 대한 충실한 재현에서 벗어나 풍경을 자유자재로 편집하고 연출했다는 점이다. 배경을 한가지 색으로 과감히 단순화시키거나 건물을 거꾸로 뒤집고 기울이는 것은 물론,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 속 풍경에 공사현장을 오버랩시키기도 했다. “개발장면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 하려는 생각이 컸어요. 언제난 일상으로부터 이미지를 가져오지만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은 추상적인 감정이거든요. ”
또 다른 변화는 그림 속 풍경 위에 인물이나 신체의 일부가 등장한 점이다. 이전까지 그가 보여 준 거리를 두고 멀찍이 바라 본 인부나 행인이 아니다. 그 자신과 주변 인물들을 전면에 가깝게 끌어당겨 그렸다. 폐허를 배경으로 가슴을 들춰 보이고 있는 여자가 전면에 등장한 <너의 노래, 지혜>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어떻게 이렇게 과감한 변화를 감행했을까? “계속 정적인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개인적인 상황이 겹쳐 20대 말 많이 소심해져 있었는데, 정확한 계기는 없지만 30대를 지나니까 용감해 지더라구요. 나의 감정, 상황, 의사에 대한 솔직함이 작업에 반영된 것 같아요. 그림 속의 행위는 제 변화의 시점을 기념하자는, 의지의 표현이었어요. 일단 한번 확 오픈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질 것 같았죠. <여기2>는 풍경 안에 신체 부위를 도발적으로 던져 넣음으로써 감상자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잡아 끌었다. 수신호를 보내듯 위로 뻗어 겹친 손 뒤로 헐벗은 공사 현장이 펼쳐져 있다. 두 손은 이미 진행된 개발과 폐허에 맞서는 개인의 ‘존재 증명’같기도 하다. 작가가 현실을 비웃듯 마음껏 ‘노는 행위’의 표상 같기도하다.이런 대담한 ‘손의 표정’은 개발 현실과 서로 역설로 작용하면서 묘한 정치성 마저 느끼게 한다.
작가 이제는 온전한 자기 이야기를 풀어 내기 위해 현실과 화폭 사이를 오가며 오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그가 지금 구사하고 있는 자유로운 기법과 소재는 그러한 체험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치열한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제의 작품에서, 우리는 시대성을 불러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미학적 가능성을 만날 수 있다.